목사가 당연히 해야 하는 많은 일중에서 강도권(설교하는 행위)은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목사는 언제 어디서나 설교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설교를 즐겨하는 목사님들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설교가가 아닌 이상, 

그리고 신령한(?) 영적능력을 소유한 몇 분의 목사님들을 제외하고 제가 만난 대부분의 목사님들을 만나보면, 

설교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설교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는 말 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열흘 동안 입원까지 하면서 몸을 추스르고 돌아왔더니, 성도들이 한결 같이 제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설교를 좀 줄이세요!” 이렇게 말씀 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알기에 너무 고맙고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설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사실, 저는 위에 언급했듯이, 천성적으로 타고난 설교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령한 영적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내성적이고, 수줍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설교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실, 이곳에 있으면서, 그리고 한국을 방문하면, 이곳저곳에서 설교를 해 달라고 요청이 들어오기도 합니다만, 

될 수 있으면, 어떡해서든지 안하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설교가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교회에서 설교하는 이유는, 또 지금까지 설교해 온 이유는 설교하는 행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설교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목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요! 설교가 내게 맡겨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고달프고, 힘들 때, 얼마든지 다른 분들에게 부탁 할 수 있고, 

또 부탁을 드리면, 저 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끼칠 수 있는 분들이 제 주변에는 많습니다. 

그럼에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강단을 사수(?)하고자 하는 이유는, 이 교회 강단은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일터요! 

사역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책임감(사명감)은 무섭습니다. 

무언가를 하게 하는, 그리고 이루어 내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책임감(사명감)은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일생의 초점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고, 그래서 그분은 공생애를 그렇게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맡겨진 일에 책임감(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겨준 책임(사명)은 무엇입니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물론,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을 주님이 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설교하는 이유입니다.